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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다 믿다 하다 is unavailable, but you can change that!

“저, 목사님 이런 거 질문해도 되나요?” “쓸데없는 것 물어봐서 죄송해요” 교회 안에서 신앙적 고민과 질문거리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왜일까? 아마도 질문을 했다가는 이것이 곧 “믿음 없음”으로 보일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신앙에 있어 의심은 나쁜 것이라는 말을 들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그냥 믿어”식의 강권과 “일단은 순종해”식의 지시에 너무도 익숙해져 버렸다. 이런 신앙 교육은 성도들이 홀로 고민하게 만들고 결국 신앙에서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신앙의 여정에서 ‘의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 아니 오히려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말하며 신앙에 대해 고민하고 묻는 과정이...

이야기하지만, 또 어떤 분은 그런 제안조차 받을 수 없는 자리에서 묵묵히 지내십니다. 결국 소유에 대한 부정도 자기 의가 될 수 있습니다. 차라리 자신의 이런 욕구를 인정하되,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소유욕보다 타인에 대한 사랑이 더 강렬해지기를 기도하십시오. 그럴 때 자연스레 소유를 포기하고 희생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구조적 악이나 기득권이 내뿜는 악에 대해 우리는 생각보다 더 크게 보고 더 강력하게 외쳐야 합니다. 다만, 주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제발 좀 너그럽게 접근합시다. ‘에쿠스’라는 특정 물화 소유와 사용에 대한 상황 윤리를 절대적으로 해석한다면 자신의 머리통과 기분만 피곤해질 뿐입니다. 나중엔 주변 사람들마저 피곤하게 하지요. 평범한 우리 주변에 뭐 그리 잘나고 특별한 인생들이 있다고 그리 쥐 잡듯이 잡아 댑니까? 사치 비용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내가 마시는 스타벅스도 누군가에겐 사치니까요. ○ 자, ‘목사가 에쿠스를 타도 됩니까?’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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